알짜사회학
반다문화 담론과 타자 만들기 - 육주원
 
Socio-log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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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4 22:16:12

언제부터인가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다문화"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공영방송에서는 명절마다 이주민 노동자들의 장기자랑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심지어 집권 보수여당 대표마저 조선족 이민을 장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무분별한 노동이민을 반대하는 반다문화 진영에서는 이러한 다문화주의를 "나라 망치는 주범"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이주민들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지 못할뿐더러 한국 국민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끼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언뜻 보기에 다문화 담론과 반다문화 담론은 서로 상충하는 듯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글에서 소개하는 육주원의 논문은 다문화주의를 둘러싼 대립이 실은 "협력적 경쟁"이며 결과적으로 이주민들의 타자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폭로한다 - 운영진


육주원. (2016.08). 반다문화 담론의 타자 만들기를 통해 본 다문화-반다문화 담론의 협력적 경쟁관계. 한국사회학, 50(4), 109-134.




반다문화 담론과 타자 만들기


언제부터인가 학계와 언론, 그리고 여러 정책 연구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는 한 국가 안에서 다양한 문화전통들의 공존을 장려하고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문화적 화합을 의도하는 이념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서 알려져 있듯이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다문화 개념은 여러 문화의 공존을 지향하는 정치철학적 의미의 다문화주의와 거리가 멀다. 다문화주의가 표방하는 원칙적인 이념과 달리 한국의 다문화는 문화적 통합을 꾀하는 “동화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육주원, 2016: 113). 실제로 한국의 다문화주의 담론과 정책이 겨냥하는 대상은 1세계 출신의 백인이 아니다. 그 대신 일반적으로 한국에 비해 경제적 지표가 뒤처져있다고 알려진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온 이민자들이 바로 “다문화” 담론의 대상이다. 이런 복잡한 맥락에서 한국의 다문화 담론,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반(反) 다문화 담론의 관계는 서구와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육주원의 논문인 「반다문화 담론의 타자만들기를 통해 본 다문화: 반다문화 담론의 협력적 경쟁관계」는 최근 온라인에서 자주 등장하는 “반(反)다문화” 담론을 분석하고, 다문화 담론과 반다문화 담론 양자가 단순히 대립하기보다는 협력적으로 경쟁하여 이주민들을 타자화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를 위해 논문은 다문화 담론과 반다문화 담론을 계급, 인종, 젠더의 세 가지 층위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문에 따르면 다문화 담론과 반다문화 담론 모두는 마치 교묘하게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이주민들을 계급적으로, 인종적으로, 젠더적으로 차별하고 그들의 성원권을 빼앗고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보이기 위해 저자는 반다문화 인터넷 카페의 구성원들을 심층면접한 자료를 이용한다. 통념과 달리 반다문화 카페의 인터뷰 대상자들은 외국인 혐오나 과도한 민족주의와 같은 비합리적인 동기가 아니라 나름의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며 정부의 다문화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한다. 

먼저 저자는 반다문화 담론이 이주노동자들의 유입을 일종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논리를 설명한다. 반다문화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결코 외국인 혐오가 아니며, 정부 주도의 이주노동자 장려정책이 서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서민 생활을 파탄시킨다고 주장한다. 즉 반다문화주의자들은 ‘재벌’과 ‘서민’의 대립구도를 설정하고 정부의 다문화정책이 국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저지를 기도하는 재벌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117). 하지만 저자는 반다문화주의 담론을 펼치는 이들이 신자유주의적 고용정책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한다(118). 오히려 이주노동자 고용정책을 비난하는 반다문화주의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운영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업종은 퇴출시키는 게 낫다”는 신자유주의적 발언을 하는 등, 그들 또한 신자유주의 담론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담론은 다문화주의자와 반다문화주의자 모두의 근본적 가치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류 다문화 담론이 “온정주의적 시선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도구화”한다면, 반다문화 담론은 “이들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들의 필요성을 의심하는 모습을 보인다(119).

다음으로 저자는 이주노동자 중 “조선족”이 민족 개념 간의 복잡한 관계를 다룬다. 인터뷰에 따르면 반다문화 카페에서는 “다문화 정책은 민족말살정책”이라고 주장하는 선동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다양한 민족 출신의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다문화 정책으로 인해서 민족의 순수성이 훼손되며 심지어 “민족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한민족과 생물학적 특성이 동일한 조선족의 존재는 단일민족 서사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다문화 담론을 교란한다. 주류 다문화 담론의 경우, 조선족의 ‘동포성’을 강조하며 그들을 우리 사회에 진입시키려고 했다면, 반다문화 담론은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 문화적 정체성과 관습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주류 다문화주의 담론이 조선족과 같은 이주민 집단에 긍정적인 문화 양태를 귀속시킨다면, 반다문화 담론은 조선족 집단에 대한 악의적인 편견을 그들의 본질적인 특징처럼 여긴다. 이 역시 소수의 이민자 집단에 “물화된 문화”(reified culture)를 귀속시켜 문화적 차이를 본질화하고 인종화하는 데에 나아간다(125).

마지막으로 저자는 다문화 가족과 결혼이주여성의 문제로 시선을 돌린다. 이미 많은 논자가 비판했듯이, 다문화 가족 문제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은 오직 “정상가정” 혹은 “가부장적” 가정 형태의 재생산을 위한 매개체로 표상된다(125-6). 따라서 주류 다문화 담론이 남편과 남편의 가족,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부양해내는 ‘바람직한’ 이주여성상을 표상한다면, 반다문화 담론에서는 결혼이주여성들을 이기적이고 가족 재생산의 의지가 없는 이들로 비난하며 그러한 기획을 의심한다. 이는 결혼이주여성의 성원권이 오직 가부장제 가정의 재생산 과정에서 그들이 성공적으로 기여하였는지를 놓고 벌이는 논쟁이다. 그리고 이 논쟁 이면에는 공통으로 결혼이주여성의 가치가 오직 민족의 “재생산”과 “부권적 가족”의 존속과 관련되어서만 평가될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127).

이렇듯 논문은 다문화 담론과 반다문화 담론이 서로 경합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공통된 전제가 있음을 주장한다. 즉 “한 쪽은 민족국가의 생물학적 지속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 속에 다문화를 위치 지우려 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자신들이 민족국가의 진정한 주인임을 내세우며 ‘다양성의 엄격한 품질 관리’를 촉구하고 있다(129). 그러한 협력적 경쟁 관계는 결국 “신자유주의적 경제 유용성”에 따라 이주자의 가치를 매기고 민족과 국민의 경계를 나누며 본질적인 의미의 ‘문화’ 개념을 통해 인종적 “구별짓기”를 자연화한다(130). 결론적으로 저자는 우리가 다문화/반다문화 논쟁에서 공히 일어나고 있는 “인종화 효과”를 직시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적 방향성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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