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사회학
한국 노래방 성장을 둘러싼 사회문화사 – 문지현
 
Socio-log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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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8 16:06:39

한국 노래방 성장을 둘러싼 사회문화사 – 문지현


얼마 전 유흥인구가 몰리는 홍대앞 주차장 골목 근처에서 새벽까지 술자리를 가진 후 밖으로 나와 보고 깜짝 놀랐다. 술집이나 클럽만큼이나 많은 노래방이 한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유명 노래방 프랜차이즈인) S노래방 건너편에 또 다른 S노래방 지점이 있고, 또 그 바로 옆에 다시 1인 전용 S노래방, 그 옆에 2인 전용 S노래방이 있는 식이었다. 대학원생으로서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앉아 있다 보면 소주 서너 잔과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만큼이나, 집에 가는 길에 코인 노래방에 들러서 노래를 잔뜩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고는 한다. 스마트폰 노래방 어플을 통해서 모르는 사람과 함께 듀엣곡을 부를 수도 있다. 그만큼 노래방 문화는 우리에게 매우 일상적인 문화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그런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내게는 노래방 없는 삶이 잘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아주 당연하게도, 노래방은 ‘발명된 것’이다. 일본에서 가라오케 기계의 효시로 불리는 ‘8 쥬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71년의 일이고, 한국에서 노래반주기가 처음 생산된 것은 1980년이다. 1999년에서야 청소년들의 노래방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문지현(2016)의 논문 “한국 노래방의 성장을 둘러싼 사회문화사 –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중심으로”( | http://www.dbpia.co.kr/… )를 읽으면 이와 같이 너무나도 친숙하게만 생각했던 노래방에 대한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논문은 통계자료, 백서, 인터뷰자료, 신문기사 등을 광범위하게 활용하여 노래방에 관한 문화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더불어 기술(테크놀로지)과 사회, 문화의 관계를 다루는 관점을 취하는 이 연구를 통해서, 노래방이 우리의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또 사회가 노래방이라는 기술을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테크놀로지 결정론과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구성주의

과학기술학이나 매체이론 등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문제 제기는 바로 기술결정론(technology determinism)에 대한 비판이다. 기술결정론적 관점은 테크놀로지의 발명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비롯되며,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사회 발전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조건, 인과관계에서의 ‘원인’이 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기술의 발전이 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낙관’하거나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비관’하는 식의 단순한 논의에 그치기 때문에, 기술과 사회의 상호 구성적인 관계를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여겨진다. 기술결정론적인 관점은 뉴미디어를 비롯한 정보통신기술들의 발전이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기술결정론을 비판하는 기술의 사회적 구성주의(the 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 SCOT) 이론은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이 아닌 상호작용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음악 기술과 문화와 관련해, 기술의 사회적 구성주의 관점에서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으로 마크 카츠의 Capturing Sound: How technology has changed music(2004) (소리를 잡아라, 2006)을 들 수 있다. 가장 알려진 사례로는, 오늘날 대중가요의 길이가 3분에서 4분 사이에 정착되게 된 계기가 초기 녹음 기술이 한 면에 4분 30초까지밖에 녹음할 수 없었다는 사실과 관련된 것임을 들 수 있다. 이는 테크놀로지가 음악 문화를 구성해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사회에 의해서 기술이 구성되기도 하는데 사회는 특정한 기술을 광범위하게 수용하거나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에 필요한 기술을 선택한다. 가장 쉬운 예로 한국의 인터넷 환경이 매킨토시 사용자들에게 불편함을 가져다주는 현상이나, 국가별로 정격전압과 플러그의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문지현의 논문에서도 노래방이라는 기술과 사회, 문화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만들어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수가 노래방에서 자기 노래를 불러도 100점이 안 나온다

MBC 무한도전에서 방영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은 복고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90년대, 200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추억의 가수’들은 노래방에서 자신의 노래를 불러 95점 이상을 받아야 ‘토토가 출연권’을 얻을 수 있었다. 많은 가수들은 가볍게 95점을 넘기고, 심지어 몇몇 팀은 100점을 획득해서 ‘역시’라는 반응을 자아냈다. 그런데 과거 KBS 스펀지에서는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를 부르면 100점이 안 나온다는 내용의 실험을 방영한 적이 있으며, 당시에 실제로 대부분의 가수가 100점을 받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항간에서는 노래방 점수는 소리를 크게 내는지 작게 내는지를 바탕으로 측정되기 때문에, 무조건 크게 불러야 100점이 나오고 가수라 하더라도 작게 부르면 100점이 안 나온다는 식의 ‘루머’들이 생성되기도 했다.




논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 노래방 점수에 얽힌 미스터리는 노래방 기기라는 기술을 사회적 조건이 어떻게 구성했는지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초기의 노래방 기기는 ‘LD 가라오케’라는 형식이었는데 이때는 노래방용 음원도 뮤지션을 고용하여 직접 연주함으로써 제작했다. 그런데 요즘도 그렇듯이, 노래방의 곡수를 늘려야 노래방에서 소비자들이 받는 만족감은 커지지만 반면에 자주 불리는 노래만 많이 불리기 때문에 모든 곡을 녹음하는데 연주자들을 쓰는 것은 수익성 측면에서의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러한 이유로, 전자악기를 통해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된 MIDI 기술이 등장했을 때 노래방 기계 역시 ‘컴퓨터 노래반주기’의 형태로 바뀌었다. 초기 컴퓨터 노래반주기는 LD 가라오케에 비해 음질도 떨어졌으며, 자연스럽게 MIDI의 형식에 의해서 실제의 음악 반주는 단순하게 조절되었다. 즉, 이렇게 수정된 전자음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 때, 악기 음악 위에 가창을 얹던 가수들은 어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전자음악 기술도 실제 악기에 좀 더 가깝게 발전하고, 또 전자음악이 실제 음원 제작에 활용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좁혀졌지만 말이다.

비슷하게, LD 가라오케 시절에는 원래 질적 차별화를 위해서 가수 본인이 등장한 영상을 제작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 함께 재생되도록 했었는데 이것 역시 높은 출연료로 인해 수지가 맞지 않게 되면서, “기존의 LD 영상을 일정한 패턴으로 나눈 후 노래 내용에 어울리는 장면을 재생하는” ‘오버레이’ 방식의 개발을 추동했다. 우리가 노래방에서 임창정이 등장해서 울고, 싸우고, 피 흘리는 뮤직비디오를 매번 보게 된 것은 이러한 사회와 기술의 상호 직조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1992년 대학 총학생회들은 ‘노래방 안 가기’ 운동을 벌였다

오늘날 노래방을 비행문화나 퇴폐문화로 보는 시각은 거의 사라졌지만, 도입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노래방 기기 판매와 노래방 영업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가장 크게 극복해야 할 적은 노래방 문화를 보는 사회의 비판적인 시선이었다. 노래방이 문제적으로 여겨졌던 것에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있는데, 하나는 노래방이 일본에서 들어온 ‘왜색 문화’로 이해되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처음 노래방 기기가 설치된 곳들이 주로 술집 등이었기 때문에 노래방 또한 자연스럽게 유흥문화나 퇴폐문화로 여겨졌다는 사실 탓이다.


▲ 동아일보 (1992, 5, 27). 大學면학분위기 조성 새생활문화운동 흐뭇. 15면.


놀랍게도 술집에 설치된 노래방 기기가 아니라 노래만을 부르는 ‘노래방’의 최초의 형태는 요즘에서야 등장한 줄 알았던 ‘동전노래방’의 형태였는데, 1991년 4월 부산 하단동 동아대학교 앞 오락실에 설치되었다. 한국의 노래방이 부산에서 시작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데, 부산이 문화교류가 금지되어 있었던 일본의 문화를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가장 먼저 받아들여 왔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부산지역의 생겨나기 시작했던 ‘가요방’도 주로 업무 차 방한한 일본 고객을 호객하기 위해 가라오케 기기를 들여놓고 영업을 했던 술집들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이런 배경 탓에, 노래방이 ‘저급한 왜색문화’라는 이유로 비판하는 담론들이 신문지상에 등장해 왔으며, 1992년 대학가에서 불었던 ‘신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중앙대 총학생회, 숭실대 총학생회 등에서 ‘노래방출입 자제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들이 변화하게 된 것은 노래방 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 그리고 유흥문화나 일본문화로서 노래방을 이해하는 시선을 바꾸고자 했던 ‘노래방’에 이해관계를 가진 경제 주체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한국의 노래방 기기 제작 업체들은 가라오케가 갖는 ‘일본’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국내의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기계라는 점을 홍보에서 강조하는 전략을 취했다.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에서 노래방 형식을 콘텐츠로 만들어내면서 노래방은 대중들과 점차 친근해져가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KBS ‘가요무대’에서 영상과 자막 가사만으로 노래를 소개하는 코너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가라오케 흉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MBC TV 주부가요열창의 경우 방영 한 달 만에 시청률 50%를 넘기는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어느덧 노래방은 이 글을 마무리하는 중인 밤 10시 48분, 노트북을 덮고 당장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친근한 일상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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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5 23:05:45

으와 이런 논문 너무 좋아요 >_<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새는 코인노래방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아요. 노래'방'의 공간 활용이 극히 제약되는 대신에 손님은 싼 값에 노래를 부르고, 점주는 더 많은 공간에 기기를 놓을 수 있지요. 서비스를 둘러싼 눈치 싸움도 적고요. 카페 등 공간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노래방은 '노래만 부르는 곳'이 되어버린 듯해요.